금빛 메두사를 시그니처로 하는 지아니 베르사체. 이 강렬한 로고는 한 번 보면 잊기 힘들다. 베르사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프로 한 신고전주의의 디자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메두사 로고를 선택했다고 한다. 눈에 띄는 로고처럼 지아니 베르사체는 강렬하고 섹시하며 글래머스한 스타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의 브랜드다. 베르사체라는 세기의 브랜드를 남겼지만, 정작 디자이너 자신은 비극적인 살인 사건의 희생양이 된 지아니 베르사체와 그의 브랜드의 이야기를 살펴보겠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뿌리를 둔 베르사체의 시작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는 1946년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에서 태어났다. 칼라브리아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으로, 아름다운 조각품이나 화려한 건축물들은 지아니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고 브랜드 베르사체의 문화적인 뿌리가 되었다. 지아니의 어머니 프란체스카는 마을에서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지아니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작업실에서 놀면서 자연스레 패션을 익혔다. 아홉 살 때에는 심지어 스스로 옷을 만들어 어머니의 가게에서 팔기도 했다는 설이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지아니 베르사체는 뛰어난 재단 실력을 소유한 몇 안 되는 디자이너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지아니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어머니의 작업실에서 일하는 것이 더 적성에 맞았다. 어머니의 작업실에서 원단 바이어로 일하면서 원단과 부자재에 대해 좀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였다. 그는 매장에서 손님들과 상담하며 판매에 대한 노하우도 차근차근 쌓아갔다.
1972년은 지아니에게 하나의 분기점이 되는 해이다. 그는 패션의 본고장인 밀라노로 건너가 플로렌틴 플라워즈(Florentina Flowers)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이어 제니(Genny), 컴플리체(Complice), 칼라강(Callaghan)과 같은 이탈리아 유명 브랜드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경영학을 전공한 형 산토 베르사체의 도움으로 1978년 32세의 나이에 비어 델라 스피가에 자신의 첫 부티크 지아니 베르사체를 오픈했다. 그리고 그 해 말,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여성복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이탈리아 패션계의 혜성으로 떠올랐다. 베르사체가 세계적인 엘리트 디자이너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79년 미국의 사진가 리처드 애버던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리처드는 베르사체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주는 멋진 화보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베르사체의 진가를 알리는 역할을 해낸 것이다. 그는 1979년 남성복 컬렉션을 성공시킨 뒤, 세계 곳곳에 부티크를 설립하고 오트 쿠튀르 라인인 '아틀리에', 대중을 위한 비교적 저렴한 라인인 '이스탄테', 남성복 라인인 '브이 투 바이 베르사체', 마담 사이즈 브랜드 '베르사틸', 캐릭터 캐주얼 '베르수스', 진 브랜드 '베르사체 진'을 잇따라 선보이며 브랜드를 확장시켰다. 뿐만 아니라 액세서리, 향수, 안경과 보석, 인테리어 라인을 넘어 심지어 호텔 사업에까지 그 위력을 보여주며 오늘날 베르사체 제국을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베르사체의 성공에는 당시의 시대 상황도 한몫을 했다. 1980년대 세계적인 경제 성장기를 맞으며 패션 업계는 파워 드레싱의 시기라 불리며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이때 베르사체의 섹시하고 에너지 넘치는 디자인은 파워풀한 시대 분위기에 딱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그의 디자인은 섹시하고 육감적인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있었다. 그 덕분에 섹시하게 보이고픈 수많은 여배우들이 시상식때 베르사체의 의상을 찾았다. 사업가 기질이 뛰어난 지아니는 톱스타나 모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옷을 입혔다. 그렇게 대중매체를 패션으로 끌어들이며 브랜드 베르사체는 눈부시게 성장해 갔다. 그러나 지아니 베르사체는 1997년 7월 16일,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 자택 앞에서 동성애자 연쇄 살인범 앤드류 커내넌의 총에 맞아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게 된다. 영원히 화려할 것 같았던 그의 인생이 급작스럽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가 사망한 후, 베르사체의 평생의 뮤즈이자 사업의 조력자였던 여동생, 도나텔라 베르사체(Donatella Versace)가 오빠의 뒤를 이어 오늘날까지 베르사체의 디자인을 담당해 오고 있다. 특히 '아틀리에 베르사체'는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특별히 디자인한 드레스로 모두 핸드메이드로 제작되며 전 세계 톱스타들과 셀러브리티들에게만 제공되고 있다. 특유의 우아하고 화려한 의상으로 레드 카펫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베르사체 패션의 특징
베르사체 디자인의 혁신성은 역사주의,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대담한 문양, 과감한 컬러와 독특한 소재의 사용에서 잘 드러난다. 지아니는 원단과 실루엣의 조화를 가장 완벽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색채의 마술사라 불릴 정도로 다양하고 강렬한 컬러와 화려한 무늬를 트렌드에 관계없이 사용했다. 지아니는 "섹시함과 관능은 인간의 천성이며 나는 천성을 거스르는 것들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베르사체의 패션에서 흘러내리는 듯한 드레이프의 활용, 시스루 소재의 사용, 반짝이는 시퀸 소재의 사용, 다양한 수공예적 장식은 여성성을 나타내는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여성의 성적 부위 노출, 칼로 자른 듯한 슬릿 등으로 관능미를 나타냈다. 그는 신체가 많이 드러나는 노출이 심한 드레스로 악명이 높기도 했다. 베르사체의 어찌 보면 경박해 보이는 짧은 스커트, 반짝이는 소재와 화려한 컬러감의 의상은 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성들이 본인이 여성임을 드러내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를 원했다.
그의 디자인에는 또한 예술사와 역사주의 개념이 많이 반영되어 있었다. 지아니의 역사주의 의상은 단순히 한 시대의 스타일이나 문양을 차용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대의 이질적인 예술 양식과 패턴을 자유롭게 섞는 포스트모더니즘 패션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전주의와 르네상스 시대를 섞거나, 바로크 시대와 미래주의를 혼합하여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문양을 실크 원단에 프린팅해 이브닝드레스, 원피스, 스커트 등 각종 의류에 사용하였다. 지아니는 특히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 애정이 깊었다. 그래서 브랜드의 로고를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괴물인 메두사와 그리스의 격자무늬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메두사에게 사랑에 빠지면 절대 헤어나올 수 없고, 당당하고 강인한 여성을 대변할 수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베르사체의 아이콘으로 메두사를 선택했다고도 한다.
지아니 베르사체는 비극적 사고로 패션계를 떠나게 되었지만, 인간의 성적 욕망과 아름다움과 부를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을 만족시킨 베르사체만의 매력과 스타일은 여전히 전세계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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