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이고 펑키한 디자인 하면 떠오르는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 그녀는 1970년대 영국의 펑크 문화가 탄생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펑키와 전혀 거리가 먼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이런 그녀가 어떻게 펑크 패션의 선두 주자가 되어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되었을까?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는 한때 해로우 예술학교에서 패션을 공부하긴 했으나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데릭 웨스트우드와 결혼하여 아들 벤자민을 낳은 후 평범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데릭과 이혼을 하고, 오빠 친구였던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을 만나게 된다. 바로 그가 비비안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인물이다. 맥라렌은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패션과 음악에 빠진 소위 사회 반항아였고, 특히 로큰롤 정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교사였던 비비안이 처음 패션계에 발을 들인 것은 1971년, 연인 맥라렌과 함께 런던 킹스로드 430번지에 그들의 첫 번째 부티크 '렛 잇 락(Let it rock)'을 낸 것이 시작이었다. 렛 잇 락은 맥라렌이 디자인한 테이 보이와 로큰롤로 대표되는 영국 젊은이들의 스트릿 패션을 선보였다. 그리고 둘은 관심사가 바뀔 때마다 가게 이름과 컨셉을 바꾸었다. 바이커의 가죽 재킷 슬로건에서 딴 '살기엔 너무 타락했고, 죽기엔 너무 이르다(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는 이름에서부터 'SEX', '파괴(Destroy)'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스타일이 변모했다. 1976년 또다시 가게 이름을 '난동꾼들(Seditionaries)'로 바꾸었는데, 이것이 런던에 생겨난 진정한 첫 번째 펑크 의류 매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후 영국 패션의 동향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이들이 선보인 '본디지 슈트(Bondage Suit)'는 영국 펑크 패션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들은 징이 박히고 체인이 달린 옷, 찢어진 옷 등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며 기존의 관습과 체제에 대한 반항을 표현했다. 이 시기의 디자인은 이후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스타일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자신의 디자인으로 인정받은 비비안 웨스트우드
1980년대가 되면서 비비안 스스로를 주체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항상 맥라렌이 주도하던 디자인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비비안은 다양한 문화와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파괴와 반항의 요소들을 적절히 섞어보려고 하였다. 1981년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 첫번째 컬렉션에서 선택한 테마는 바로 해적(The Pirate)이었다. 해적은 유럽 역사의 한 부분이었고 그들의 범죄 행위는 반항을 표현하니, 바로 그녀가 원하는 역사와 반항의 절묘한 만남이었다. 비비안은 첫 컬렉션에서 19세기 해적들의 황금기라는 역사성을 띈 로맨틱 펑크 패션을 선보였고, 이는 '신낭만주의 운동'으로 불리며 국제적인 조명을 받았다. 그리고 이때 그녀의 런웨이 음악을 만든 사람은 맥라렌이었다. 이후로도 그녀는 다양한 문화를 접목시킨 컬렉션을 손보였다. 1982년에는 원주민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세비지(Savage)' 컬렉션을 발표했고, 1983년에는 아티스트 키스 해링에게서 영감을 받은 '마녀들(Witches)'을 발표하며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녀는 이를 마지막으로 맥라렌과 결벌을 하였다. 그리고 1985년 발표한 컬렉션 '미니 크리니(Mini Crini)'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디자이너로서 독창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 컬렉션에서 그녀는 빅토리아 시대의 크리놀린과 발레용 스커트를 조합하여 섹시한 느낌을 주면서도 재미나고 발랄한 인상을 주었다. 또한 1987년 '해리스 트위드(Harris Tweed)' 컬렉션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영감을 받아 프린세스 라인의 코트와 재킷을 선보이며 전통적인 영국 테일러링을 보여주었다. 주목할 점은 코르셋을 처음으로 겉옷으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이다. 해리스 트위드 컬렉션 이후 그녀는 트위드와 타탄 의상을 많이 선보였는데, 전통적인 영국 왕실 문화와 반항적인 펑크 문화가 만나면서 비비안 웨스트우드만의 풍부한 색감, 다양한 체크 패턴들을 보여주게 되었다. 타탄체크와 ORB로고는 사람들이 비비안 웨스트우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들이 것이다. 특히 타탄체크 가방은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끌며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시그니처 아이템이 되었다. ORB 로고는 '전통과 미래의 조화'를 지향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철학이 잘 나타난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독특한 세계관과 디자인으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990년대 이후부터 전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많은 상을 휩쓸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수여하는 대영제국 제4급 훈장을 수여하고, 2006년 기사 작위까지 받게 되면서 영국 패션사에 미친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2003년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미술관에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정리하는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었다.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옷차림과 반항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각인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그 이면의 환경문제나 사회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새로운 미래를 찾고자 하는 행보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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