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하면 가장 떠오르는 브랜드, 질 샌더(Jil Sander). 질 샌더는 캘빈클라인, 프라다, 헬무트랭과 함께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대중들에게 알린 브랜드 중 하나로 독일 태생의 디자이너 질 샌더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에 영향을 받은 질 샌더의 디자인 철학은 단순함과 실용성 그리고 구조적인 것을 추구했다. 모노톤의 엄격하고 절제된 코트와 슈트, 장식 없는 고급 소재의 블라우스와 원피스로 그녀만의 스타일 가치를 구축했다. 브랜드 질 샌더에 대한 이해를 위해 설립자인 디자이너 질 샌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완벽주의자가 만든 브랜드
1943년 11월 27일, 독일 북부에 위치한 베셀부렌에서 태어난 질 샌더의 정식 이름은 하이드마리 지린 샌더(Heidemarie Jiline Sander)이다. 함부르크에서 자란 질 샌더는 크레펠트에 있는 섬유 공학 학교를 졸업한 후 2년간 교환학생으로 로스앤젤레스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 후 뉴욕의 여성지 맥콜즈(McCall's)의 패션기자로 일했고, 독일로 돌아와 여성 잡지 페트라(Petra)에서 에디터로 경력을 이어갔다. 그리고 1967년, 스물셋의 나이로 함부르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질 샌더' 부티크를 오픈했다. 처음에는 수입한 디자이너들의 의상과 함께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팔았다. 그 후 1973년 처음으로 파리에서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대중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컬러풀하고 액세서리가 많은 화려한 옷들이 트렌드와 정반대의 스타일을 질 샌더는 들고 나온 것이다. 질 샌더의 스타일은 심플하면서도 매력적인 라인에서 시작된다. 또 고가의 최고급 원단을 사용하여 꼼꼼하게 제작하는 것이 기본으로, 불필요한 액세서리는 최소화하는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파리지앵들은 그녀의 옷을 외면했지만, 질 샌더는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고집을 절대 꺽지 않았다. 또 서로 겹쳐 입어도 완벽하게 잘 어울리도록 디자인 한 어니언(Onion) 룩을 선보이며 절제된 세련미를 이어갔다. 이런 특징 때문에 그녀는 미니멀리즘의 마스터, 절제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질 샌더의 성장과 전성기
1978년 화장품 업체 랭커스터(Lancaster)와 협업으로 향수를 제작해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질 샌더가 직접 모델로 나섰다. 질 샌더의 향수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질 샌더의 이름을 먼저 알리게 되었고, 마침 커리어 우먼들이 늘어나면서 고급스러운 소재와 세련된 질 샌더의 디자인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녀의 옷은 커리어 우먼들의 필요와 요구에 딱 맞는 옷이었다. 여성의 몸을 강조하던 다른 브랜드들과 달리 여유롭고 실용적인 실루엣으로 여성을 해방시켰다. 그녀는 '캐시미어의 여왕'이라는 별명답게 고급 소재를 잘 활용하여 인체를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또한 섬유공학을 전공한 그녀답게 신소재 사용에도 노력을 하였다. 요즘 많이 사용되는 네오프렌도 그녀가 먼저 사용하였다. 이런 질 샌더의 디자인 철학은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빠르게 성장해 갔다.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는 90년대는 질 샌더의 전성기였다. 1989년 질 샌더는 프랑크푸르트 주식시장에 상장한 첫 번째 패션 기업이 되었고, 1997년 남성들도 질 샌더의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질 샌더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와 북미로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질 샌더는 유별날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의 사업을 직접 통제하는 완벽주의자로 유명했다. 하지만 혼자서 컨트롤하기엔 회사 규모가 커지자 전문 경영인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1999년 프라다 그룹에 지분 75%를 매각하고 경영은 프라다 그룹에 맡긴 채 그녀는 디자이너로서 창조적인 작업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디자인 철학과 경영진의 경영철학이 마찰을 빚게 된다. 질 샌더는 이전처럼 고급 소재를 사용한 높은 품질의 디자인을 고집하였지만 경영진이었던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는 사업적 관점에서 적정한 가격선을 추구하였다. 서로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결국 2000년에 질 샌더는 자신이 만든 브랜드를 떠나게 되었다. 질 샌더가 없는 질 샌더는 미니멀이라는 철학을 잃고 침체기를 맞이했다. 질 샌더를 떠난 지 3년 만에 그녀는 다시 브랜드로 복귀를 했지만 경영진과의 불화로 1년 만에 다시 떠나게 된다. 이런 질 샌더를 일본의 온워드 그룹이 인수하였고 질 샌더의 빈자리를 라프 시몬스(Raf Simons)가 채우며 새로운 색을 입혀갔다. 라프 시몬스는 질 샌더의 보수적이고 경직된 이미지를 밝고 경쾌하게 바꾸어 놓았다. 실루엣에 있어서도 좀 더 여유 있고 영한 느낌으로 바뀌었고, 포멀과 캐주얼을 믹스매치하여 질 샌더를 더 젊고 로맨틱하게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질 샌더와 라프 시몬스의 조합은 조화가 잘 어우러져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며 7년간 함께 하였다.
브랜드 질 샌더와 디자이너 질 샌더의 그 후
라프 시몬스가 떠난 질 샌더 브랜드는 다시 한번 침체기에 접어 들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디렉터가 영입되었는데 바로 현재의 루크&루시 마이어 부부 디렉터이다. 루크 마이어는 남성복을, 루시 마이어는 여성복을 담당하며 질 샌더를 이끌어 가고 있다. 프라다 그룹을 떠나 온워드에 인수되었던 질 샌더는 다시 2021년 이탈리아 패션 그룹인 OTB로 인수되었다. 다른 그룹에 비해 브랜드 철학과 비전을 중요시하는 OTB그룹에서 질 샌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한편 질 샌더를 떠난 질 샌더는 패션계를 떠나 고향 독일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2009년 일본의 패스트패션으로 대표되는 유니클로와 손을 잡고 다시 컴백했다. 그녀의 이름을 딴 유니클로 '+J'라인은 그녀 특유의 간결함과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유니클로의 실용성과 만나 줄을 서서 구매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는 미니멀리즘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을 끝으로 +J 라인은 나오지 않다가 2020년 다시 질 샌더는 유니클로를 통해 돌아와 새로운 디자인의 길을 기척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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