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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이야기

오드리 헵번이 사랑한 브랜드, 지방시

by 마이빈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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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브리나'의 오드리 헵번 의상

 

  만인의 연인 오드리 헵번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입었던 세련된 리틀 블랙 드레스는 고급스럽고 심플한 디자인과 실루엣을 특징으로 하는 지방시의 작품이다. 이후 LBD라는 패션 코드를 만들어내며 당대 패션 트렌드를 주도했다. 과거 엄격하고 깔끔한 스타일에서 좀 더 관능적인 고딕 스타일로 재탄생하여 셀러브리티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브랜드 지방시. 지방시의 탄생과 변천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지방시 브랜드의 탄생과 변화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지방시는 지방시 브랜드의 창립자이자 디자이너였던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지방시는 열 살 때 파리 박람회에서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고 한눈에 매료되어 패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 그 후 어린 지방시는 패션지에 나오는 의상을 따라 그리는 것이 취미가 되었고, 특히 발렌시아가의 의상에 푹 빠져 버렸다. 1944년 17세가 되던 해에 그는 파리로 가서 프랑스 일류 예술학교에서 공부하며 실력을 쌓아 나갔다. 이후 1945년 자크 파트, 1946년 로버트 피제, 1947년 뤼시앵 를롱 등 여러 부티크에서 경력을 쌓다 드디어 1951년 파리, 알프레드 드 비니 8번가에 자신의 첫 부티크를 오픈했다. 자신의 첫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자금이 여유롭지 않던 지방시는 남성복 와이셔츠로 쓰이던 저렴한 흰색 면을 선택했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원단이 주를 이루는 오투 쿠튀르에서 희색 면을 가지고 컬렉션을 준비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그의 첫 번째 컬렉션 이름은 '세퍼레이츠(Seperates)'로 스커트와 블라우스처럼 하나의 드레스가 아닌 단품을 디자인해 쇼에 올린 것이다. 당시 오트 쿠틔르에서는 드레스, 혹은 한 벌로 이루어진 의상을 선보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쇼에서 지방시는 베스트셀러 아이템인 '베티나 블라우스'를 탄생시켰다. 당시 프랑스의 유명 모델이었던 베티나 그라지아니가 이 블라우스를 입고 쇼에 서게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 블라우스는 경제적인 하얀 면 원단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러플이 달린 소매와 깃이 올라온 네크라인이 만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이는 곧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당시 패션의 클래식이 되었다. 첫 컬렉션의 성공으로 지방시는 금세 유명 디자이너 반열에 올랐다. 지방시의 옷은 연령과 체형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잘 어울렸기 때문에 지방시의 옷을 한번 구입한 사람은 평생 고객이 되고는 했다. 지방시의 옷을 사랑한 유명 인사 중에 재키 케네디도 있었는데,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이 발생했고 이 비극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방시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재키 케네디가 장례식 때 입을 옷을 지방시에게 주문했고, 케네디 가문 전체가 지방시의 옷을 입고 장계식에 참석한 것이 TV와 신문을 통해 전파되면서 지방시는 다시 한번 세간의 집중을 받게 되었다. 그는 발렌시아가 이후 재단을 가장 완벽하게 하는 디자이너로 칭송을 받았다. 1990년대 패션계의 흐름은 거대 기업의 비즈니스로 바뀌어 갔고 지방시도 1988년 LVMH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지방시는 1995년 7월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패션계에서 은퇴했고, 이후 지방시는 존 갈리아노와 알렉산더 맥퀸, 줄리안 맥도널드를 거쳐 리카르도 티시에 의해 이어져 나갔다. 지방시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검정 배경에 현란하지만 어두운 풍의 프린트는 모두 리카르도 티시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티시는 여성복으로 시작한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방시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한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있다.  2020년부터는 매튜 윌리엄스가 지방시를 이끌고 있다. 스트릿 패션의 감성이 짙은 그가 앞으로 지방시에서 티시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만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녹여진 디자인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발렌시아가와의 인연

 

  지방시의 인생과 그의 브랜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바로 지방시의 우상이자 평생 친구였던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이다. 지방시에게는 '여성들의 몸매가 뚱뚱하든 말랐든 상관없다. 내 옷이 그녀들을 멋지게 보이도록 만들어 줄 테니까.' 라는 지방시만의 패션 철학이 있었다. 이는 바로 발렌시아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61년 지방시는 자신의 부티크를 발렌시아가의 부티크 맞은편으로 옮겼다. 우연히 만나게 된 둘은 처음에는 스승과 제자처럼 시작되었으나 점차 비슷한 예술적 감각과 취향 때문에 절친한 친구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발렌시아가는 지방시를 위해 자신의 스케치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아 나갔다. 심지어 발렌시아가가 은퇴할 때는 자신의 VIP 고객들마저 지방시에게 넘겨줄 정도로 신뢰하게 된다. 당시 오트 쿠튀르계에서는 정말 드문 일로, 발렌시아가가 지방시를 매우 아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랬던 만큼 심플하고 우아한 라인, 완벽한 재단, 절제미 등 지방시의 디자인 경향과 철학은 발렌시아가와 근본이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오드리 헵번과의 인연

 

  지방시에게 영향을 끼친 또 다른 인물은 오드리 헵번이었다. 오드리 헵번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 대부분의 의상 제작을 지방시에게 부탁했다. 헵번이 영화에서 선보인 의상은 크게 유행되었고, 지방시는 헵번이 사랑한 브랜드로 단숨에 명성을 얻게 되었다. 오드리 헵번과 지방시의 인연은 영화 '사브리나'에서부터였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헵번의 의상 또한 큰 사랑을 받았고 지방시는 오스카 상 의상 디자인 부문을 수상하게 되었다. 특히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었던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선보이며 지방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었고 오드리 헵번은 패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오드리 헵번은 새 영화를 찍을 때마다 지방시의 의상을 입었으며 이 둘은 영화 역사상 가장 멋지고 놀라운 스타와 디자이너 콤비를 이루었다. 오드리 헵번은 어떤 스케줄이 있어도 지방시의 쇼에는 꼭 참석해 맨 앞줄에 앉아서 그를 응원했다. 지방시는 1954년 오드리 헵번과 조우한 후 40년간 오직 그녀만을 모델로 기용하며 감사를 표시했고, 1957년에는 그녀를 위한 향수 '랭테르디'를 만들었다. 불어로 '금지'라는 뜻의 이 향수는 오드리 헵번 외에는 그 누구도 쓸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렇게 그녀는 지방시의 영원한 뮤즈였고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둘의 우정은 40년 가까이 지속되었으며, 1993년 오드리 헵번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의 옆에서 지방시가 함께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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