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여 년 전, 귀족들을 위한 마구 용품을 만드는 브랜드로 시작한 에르메스는 오늘날 가장 고집 세고 가장 완성도가 높은 가장 비싼 명품 브랜드로 손꼽힌다. 루이뷔통, 샤넬과 함께 3대 명품 브랜드로 꼽히며, 에르메스만의 독보적인 전통성과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으로 3대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최고의 브랜드라는 평을 듣고 있다. 에르메스는 의류, 구두, 시계 및 향수, 테이블 웨어 등 총 14개의 라인을 선보이고 있으며 그중 가방과 스카프가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특히 수년을 기다려야 살 수 있다는 에르메스의 켈리백과 버킨백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다른 브랜드는 감히 따라 하기 조차 힘든 엄격한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에르메스의 시작과 가족경영
프랑스를 대표하는 브랜드 에르메스는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가 세운 마구 상점에서 시작했다. 말을 타고 다니던 당시 마구는 상당히 중요했다. 대충 만들어진 마구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인데, 장인정신으로 제대로 만드는 티에리 에르메스의 가게는 튼튼한 내구성으로 인정받아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1867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그 뛰어난 장인정신을 인정받아 1등을 차지하면서 에르메스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1878년 박람회에서 티에리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가 또 다시 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 후 티에르 에르메스가 세상을 떠나고 자연스레 그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가 가업을 이어 나갔다. 샤를 에밀 에르메스는 1880년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 근처 위치한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에 마구를 취급하는 새로운 매장을 열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에르메스는 곧 전 세계 왕실과 귀족들에게 마구 용품을 납품할 정도로 그 솜씨를 인정받았다.
1902년 샤를 에밀 에르메스는 경영에서 은퇴하고 그의 두 아들인 아돌프 에르메스와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가 합류하여 '에르메스 형제'라는 이름으로 3세대 경영이 시작되었다. 1918년 에르메스의 단독 대표가 된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는 자동차의 출현으로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마구 용품에서 여행과 생활용품으로 주요 품목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가방, 벨트, 장갑에 이어 의복과 손목시계, 자동차 소품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넓혀 나갔다. 그 후 탄생한 켈리백과 버킨백은 지금까지도 많은 여성들의 위시리스트에 들어가는 백이 되었다. 하지만 새롭게 바뀌어가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딱 한 가지, 전통적인 수작업과 소량 생산 주의는 끝까지 고집했다. 특히 가죽 제품 제작 시 그 옛날 안장을 꿰맬 때 쓰던 독특한 박음질 법인 '새들 스티치' 기법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장인들이 직접 손으로 한 땀 한 땀 꿰매어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에르메스의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그 후에도 이 투철한 장인정신은 5대, 6대손 자손들에게도 이어져서 여전히 가족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 루이뷔통을 보유한 명품 대기업 LVMH가 손길을 뻗쳐오고 있지만, 에르메스는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지주회사를 설립하여 그에 대응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지퍼백과 에르메스 로고
에밀 에르메스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을 방문했을 때 자동차에 사용된 지퍼를 보고 들여와 프랑스 내 지퍼 사용에 대한 특허를 내고 독점권을 행사했다. 그는 지퍼를 이용해 세계 최초의 지퍼 달린 백을 탄생시켰고, 자동차 브랜드인 부가티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탄생한 자동차 여행용 백이라 하여 이름도 '부가티'라고 불렀다. 이것은 현재 '볼리드'라고 불리는 백이다.
1951년 에밀 에르메스가 떠나고 그의 사위 로베르 뒤마가 4대째로 장인어른의 뒤를 이었다. 에르메스의 로고가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이 뒤마에 의해서였다. 그는 에르메스의 시초인 말과 마차, 기수가 표현된 로고를 탄생시켰다. 이 로고는 에밀 에르메스가 수집한 프랑스 화가 알프레드 드 드로의 19세기 석판화 '르 뒤끄 아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에르메스는 1945년 에르메스 로고인 사륜마차 '깔레쉬'를 법률적 효력을 지닌 상표로 등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부족해진 색소로 인해 크림색 상자를 구할 수 없게 되자, 과감하게 오렌지색 상자를 선택했고 오렌지색은 오늘날 에르메스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로베르 뒤마는 에르메스의 대표 아이템인 켈리 백을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모나코의 왕세자비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한 배를 1935년에 출시된 '프티 삭 오트'로 가린 사진이 잡지에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이 백을 켈리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에 로베르 뒤마는 모나코 왕실에 찾아가 이 백을 켈리백이라고 지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공식적으로 켈리백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1978년 로베르 뒤마의 뒤를 아들 장 루이 뒤마가 이으면서 5대 경영이 시작되었다. 장 루이 뒤마가 경영권을 쥐면서 에르메스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장 루이 뒤마는 1984년 비행기 옆자리에서 당시 패션 아이콘인 제인 버킨을 만나게 되고 그녀를 위해 버킨백을 만들었다. 이 버킨백은 켈리백의 인기에 버금가는 에르메스의 대표 아이템이 되었다.
이후 에르메스는 창업자의 6대손인 악셀 뒤마를 추대했고 현재까지 CEO로써 에르메스를 책임지고 있다. 현재 에르메스는 가문의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결속력을 다져 몇 안 되는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는 명품 브랜다. 에르메스는 장인정신을 고수하며 모든 제품을 프랑스에 있는 50여 개의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5년 넘게 수련한 장인만 가방을 만들 수 있는데 한 명이 일주일에 가방을 두 개 이상 만들기도 어렵다고 한다. 에르메스는 명품 브랜드의 기업화 속에서 독보적인 장인정신과 가방에 최초로 지퍼를 단 것 같은 혁신으로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앞으로도 그 명성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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