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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이야기

지금 가장 핫한 브랜드, 구찌

by 마이빈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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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가든 컬렉션

 

  글로벌 패션 검색 플랫폼 리스트 인덱스(Lyst Index)에 따르면, 2022년 2분기에 구찌(Gucci)가 '세계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It's so GUCCI'라는 말을 아는가. 우리말로 굳이 해석하자면 '구찌스럽다' 정도 일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태어난 소위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멋지다'는 말로 통한다. 한때 '한물 간 명품 브랜드'라는 취급을 받았던 구찌가 이처럼 핫한 브랜드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구찌는 2015년 무명이었던 알렉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하면서부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미켈레는 미니멀리즘이 주목받던 시기에 홀로 화려하고 파격적인 맥시멀리즘을 내세워 밀레니얼 세대의 열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실제로 현재 구찌 매출의 55%는 35세 이하의 밀레니얼 세대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구찌의 창시자, 구찌오 구찌와 아들들

 

  구찌의 창업자인 구찌오 구찌(Guccio Gucci)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영국으로 건너가 사보이 호텔의 벨보이로 일하였다. 그곳에서 상류층의 문화를 익히고, 고급 가죽 가방과 트렁크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구찌는 고향인 이탈리아로 돌아와 가죽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작은 마구상을 열어 승마용 가죽 제품을 만들어 팔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해서 1921년 구찌오 구찌는 자신의 이름을 딴 '구찌'라는 작은 가방 가게를 오픈했다. 이것이 바로 구찌의 시작인 것이다.  구찌는 귀족들을 위한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제품을 만들어 단숨에 인기를 얻으며 사업은 점차 번창해갔다. 하지만 이탈리아 국내 브랜드에 불과했던 구찌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진 후이다. 전쟁으로 인해 물자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수입이 가능했던 일본산 대나무를 이용해 1947년 구찌의 시그니처 아이템 중 하나인 뱀부 백이 탄생했다. 대나무를 가방에 사용한 것은 최초였으며, 뱀부 백은 출시되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 아이템으로 급부상했다. 

  한편, 마구상을 운영했던 그는 안장의 발판에서 영감을 얻어 구찌의 또 다른 아이콘,  '홀스 빗(horse bit)' 장식을 만들었다. 홀스 빗은 1950년대에 가죽 핸드백에 사용된 이후, 남성용 슈즈에도 사용되며 큰 사랑을 받았고 현재까지 구찌의 디자인에 사용되고 있다. 

  구찌오 구찌가 세상을 떠난 후, 4명의 아들 중 둘째인 알도 구찌와 막내인 로돌포 구찌가 50%씩 지분을 갖고 사업을 이어나가게 된다. 알도 구찌는 GG가 겹쳐진 로고를 탄생시킨 장본인으로, 아버지인 구찌오 구찌의 이름에서 하나씩 따서 만들었다고 하다. 또한 재클린 케네디가 즐겨들어서 유명해진 일명 '재키 백'을 만들어 구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로돌포 구찌는 1966년 모나코의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매장을 방문했을 때 꽃무늬 스카프를 찾자 곧바로 일러스트레이터 비토리오 아코르네로에게 연락하여 색색의 꽃들이 아름답게 뿌려진 디자인을 제작하였다. 이것이 구찌의 또 다른 아이콘 플로라의 시작이었다. 이 플로라 패턴은 유럽 여성들에게 불티나게 팔렸고, 지금까지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다.

 

구찌를 이끈 디자이너들

 

  뱀부백에서 시작해 홀스빗, 플로라까지 오늘날 사랑받는 아이템을 탄생시킨 구찌는 1960년과 1970년대에 거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럭셔리 브랜드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구찌오 구찌의 손자들로 3대째 가업이 이어져오면서 구찌가는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스캔들을 만들어내며 이미지가 추락하고 만다. 알도 구찌의 아들 파올로는 'GUCCI PLUS'라는 짝퉁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사업에서 배제되자 아버지인 알도 구찌를 탈세혐의로 신고하여, 실제 80세가 넘는 나이에 알도 구찌는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로돌포 구찌는 죽으면서 자신의 지분 50%를 아들 마우리치오에게 상속했지만, 결국 투자회사에 이 지분을 넘기게 된다. 사치스러웠던 마우리치오의 아내 파트리치아는 자신의 남편을 청부 살인하고 구찌가의 스토리는 비극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이렇게 이미지가 추락하고, 경영난에 시달리게 된 구찌는 3대째 이어져오던 가족경영을 1994년 이래로 전문경영인의 손에 맡기게 된다. 구찌의 미국 지사장을 지내던 도메니코 드 솔레가 CEO로 임명되고, 톰 포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었다. 톰 포드는 젊은 층을 공략하며 구찌를 재해석하여 고급스러우면서도 섹시하고 도발적인 이미지로 탈바꿈시켰다. 도메니코 드 솔레는 구찌를 완전한 주식회사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합작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던 구찌는 다시금 최고의 브랜드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그 후 2015년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면서, 구찌는 기존의 심플 럭셔리를 버리고 젊고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미켈레는 가든을 컨셉으로 한 컬렉션에서 뱀, 벌, 호랑이 등 구찌의 시그니처 디자인을 만들어내며 인정받았고, 젠더리스 패션을 도입하여 밀레니얼 세대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렇게 구찌는 현재 열정적인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미켈레와 함께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핫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구찌스럽다고 한다면 그건 매우 쿨하다는 극찬으로 생각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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