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마릴린 먼로의 펄럭이는 스커트 아래 아름다운 각선미를 빛내주던 하얀 샌들이 바로 세계 명품 구두의 대명사 페라가모이다. 오드리 헵번, 비비안 리, 그레타 가르보, 소피아 로렌 등 수많은 스타들이 모두 페라가모의 열성 팬이었다. 유명 여배우들이 영화에서 페라가모 구두를 신고 등장하면서 페라가모는 명품 신발로서의 명성이 높아졌다. 페라가모는 현재까지도 가족 경영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명품 브랜드로, 여전히 장인들이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구두를 만들고 있다.
명품 구두 브랜드의 시작
1898년 이탈리아 보니토의 가난한 농부의 14남매 중 11번째 아들로 태어난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는 아홉 살에 구두 수선공이 버린 재료를 가지고 누나를 위한 구두를 만들며 흥미를 느끼고, 열한 살이 되자 나폴리의 한 구두 가게에서 일하며 구두 만드는 법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1년간 열심히 일하다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집 한 켠에 자신이 만든 신발을 모아 팔았고 마을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1941년, 살바토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간 형들을 따라 보스턴으로 건너가서 형들과 함께 신발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페라가모 형제들은 1920년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 작은 구두 가게를 열었다. 구두를 수선해 주는 일부터 시작하면서 이들의 솜씨가 입소문이 나며 주문 제작을 하게 되었다. 곧 영화사에도 신발을 납품하게 되었다. 영화 산업의 중심이 할리우드로 옮겨가자 페라가모도 할리우드로 가게를 옮겼다. 그리고 페라가모는 발이 편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낮에는 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UCLA 대학에서 해부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해부학을 바탕으로 무게중심을 받는 신발의 중앙에 철심을 박아 체중을 지탱하게 만들었는데, 이 구두는 놀랍도록 편했다. 신발 디자인에 해부학을 적용시킨 사람은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처음이었고 이는 신발 디자인 역사상 가장 큰 공헌이었다. 오늘날의 구두는 페라가모가 발견한 이 원리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의 대공황이 시작되자, 1927년 페라가모는 고향 이탈리아로 돌아와서 피렌체에 본인의 이름으로 된 첫 가게를 열었다. 이것이 바로 살바토레 페라가모 브랜드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피렌체에서 가방 가게를 오픈한 구찌와 함께 페라가모는 이탈리아의 대표 명품 브랜드로 성장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물자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건 페라가모도 마찬가지였다. 구찌가 일본산 대나무를 이용하여 뱀부백을 만들었다면, 페라가모는 가죽 대신 코르크를 이용해 웨지힐 구두를 만들었다. 그는 코르크 웨지힐 특허를 획득했고, 이는 신발 제작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페라가모는 계속해서 독특한 재료들을 과감히 이용해 획기적이고 멋진 구두를 만들어냈으며, 수많은 스타들을 위해 구두를 디자인해 '스타들을 위한 슈즈 메이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리고 1938년에는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스피니 페로디 궁전을 사들여 페라가모의 작업장이자 부티크로 만들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페라가모 본사와 구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간치니와 바라 장식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사람들의 씀씀이가 커지자 페라가모의 인기는 치솟았고 뉴욕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도시에 매장을 오픈하기 시작했다. 1950년에는 칠백 명의 직원들을 거느릴 정도로 성장하여 장인들이 하루에 350켤레의 구두를 제작하게 되었다. 또한 페라가모는 오드리 헵번을 위해 굽이 낮은 플랫 슈즈를 제작하여 히트를 치고, 굽이 가늘고 높은 스틸레토 힐을 발명하기도 하였다. 마릴린 먼로가 영화에 자주 신고 등장한 것도 이 스틸레토 힐이다.
페라가모는 구두뿐만 아니라 가방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가방 라인을 발전시켜 나가던 1958년 '간치니'라는 가방 잠금장치를 디자인했다. 간치니는 이탈리아어로 자물쇠라는 뜻으로, 페라가모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렇게 수많은 작품을 남긴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1960년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내 완다 페라가모와 딸들이 사업을 물려받게 되었다. 그중 첫째인 피암마 페라가모는 아버지의 재능을 쏙 빼닮아 열여섯 살 때부터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아버지가 간치니를 남겼다면, 피암마 페라가모는 1978년 패션계에 또 하나의 전설적인 아이콘, '바라' 장식을 만들었다. 리본 모양의 바라 장식이 달린 구두는 발표하자마자 페라가모의 최고 히트 상품이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스테디셀러로 여성들에게 열광적인 사람을 받고 있다.
페라가모는 이탈리아 장인정신을 그대로 지키며 아직까지도 구두 생산의 대부분을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가족 경영을 버리고 거대 기업 방식으로 전환하였지만, 페라가모는 아직도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는 몇 안되는 기업이기도 하다. '디자인은 흉내 낼 수 있어도 그 편안함은 모방할 수 없다'는 페라가모 브랜드의 창시자인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신념과 전통을 끝까지 지켜나가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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