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개봉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프라다의 명성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영화는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 작가인 로렌 와이스버그가 실제로 <보그>지 편집장 비서로 일하면서 겪은 일들을 쓴 것이다. 영화에서 편집장인 미란다는 미국 <보그>지의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로 실존 인물이다. 영화에서 미란다가 처음 등장할 때 프라다 가방을 들고 나오는데, 작가에 따르면, 안나 윈투어는 프라다를 즐겨 입고 다녀서 이런 제목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패션계의 거물급인 안나 윈투어가 선택한 브랜드, 프라다는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프라다의 시초
여행을 좋아하던 청년 마리오 프라다가 1913년 동생 마티노 프라다와 함께 이태리 밀라노에 '프리텔리 프라다(Fratelli Prada, 프라다 형제)'라는 최고급 가죽 제품 샵을 열면서 프라다는 시작되었다. 프라다는 사업이 번창하여 1919년에는 이탈리아 사보이 왕실의 공식 납품 업체로 지정되면서, 프라다 로고에 사보이 문장과 매듭을 그려 넣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며 잘 나가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지만,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브랜드의 위기가 찾아왔다. 1958년 설립자인 마리오 프라다가 사망하면서 그의 두 딸인 루이자 프라다와 난다 프라다가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 후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이자 루이자 프라다의 딸, 미우치아 프라다가 물려받으며 프라다는 럭셔리 브랜드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패션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쳐 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1977년부터 프라다의 CEO가 되어 프라다를 이끌게 되었다.
프라다의 시그니처 아이템, 포코노 나일론 백
미우치아 프라다는 가업으로 이어져 내려온 가죽 가방 대신, 나일론 소재로 가방을 만들었다. 1979년 포코노(pocono) 나일론 백팩을 발표하였다. 포코노 나일론은 그녀의 할아버지 마리오 프라다가 가죽 제품을 포장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수천이었다. 당시 나일론은 포장용이나 캄팽 텐트, 낙하산으로만 쓰이던 투박한 소재로 패션을 위한 소재로는 전혀 쓰이지 않았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당시의 상식을 뒤엎고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 것이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명품은 부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패션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1985년 그녀는 다시 나일론 소재를 이용한 토트백을 새로 출시했고, 이는 프라다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나일론 백은 튼튼하고 실용적이었으며, 디자인은 단순하면서도 우아했다. 사람들은 이 검은색 나일론 백의 묘한 매력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나 사회 활동이 활발한 커리어 우먼들은 어떤 옷, 어느 상황에서나 잘 어울리는 이 심플한 백에 거의 열광적이었다. 트렌드를 무시하고 탄생한 나일론 백이 어느새 가장 트렌디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되었고, 프라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그니처 아이템이 되었다. 1990년대 중후반, 전 세계적으로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기 시작하며 프라다의 나일론 백팩은 화려한 부활을 하기도 했다. 심플한 나일론 백팩이 젊은이들의 취향에 딱 맞아떨어지며, 당시 국내 대학가도 온통 프라다 백팩의 물결이었다.
프라다의 성장
미우치아 프라다는 인생 최고의 사업 파트너와 결혼을 했다. 그녀의 남편은 현재 프라다 그룹의 CEO, 파트라치오 베르텔리다. 그는 열일곱 살 때부터 가죽 사업을 시작한 타고난 사업가였다. 사업적 관계로 시작한 둘은 1987년 결혼을 하여, 사업 수완이 좋은 파트라치오 베르텔리는 프라다 그룹의 경영을 책임지고 미우치아 프라다는 디자인을 맡으며 프라다는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이 부부가 이끄는 프라다는 가방에 국한되지 않고 라인을 확장시켜나갔다. 1989년에는 프레타 포르테(기성복)를 론칭하며 프라다만의 독특한 차별성으로 '프라다 시크(Prada Chic)'라는 단어를 탄생시키며 마니아들을 모았다. 1992년에는 '미우미우'라는 세컨드 브랜드를 만들기도 했다. 프라다 여성복이 직장인을 위한 고가 라인이라면 미우미우는 프라다보다 낮은 가격대로 좀 더 젊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프라다의 세컨드 라인이다. 미우미우는 1996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들의 의상을 제작하면서 확실히 알려지게 되었다. 이어서 프라다는 1997년 란제리 라인인 '프라다 인티모'와 스포츠 라인인 '프라다 스포츠'를 론칭했는데, 프라다 스포츠에서 다시 한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98년 프라다 스포츠는 패션쇼에서 정장을 입은 남자 모델들에게 프라다 운동화를 신겨 버린 것이다. 이는 패션계에 처음 있는 혁신적인 시도였고 패션의 트렌드를 이끌어간다는 평을 받았다. 곧 프라다 스니커즈는 남성들 사이에 인기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이는 프라다만의 도전정신과 실험적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탈리아의 작은 가게로 시작한 프라다는 몇 번의 인수합병을 거치면서 LVMH와 PPR 그룹에 이어 세계 패션 업계에서 세 번째 규모의 명품 그룹으로 성장했고, 2000년대에는 패션이라는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세계적 건축가 쿨하스와 함께 1999년 뉴욕의 프라다 매장 애피 센터를 시작으로, 프라다는 패션에 건축을 접목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09년 서울 경희궁에서 펼쳐진 트랜스포머 전시회는 원, 십자, 육각형,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전시회장 자체가 영화 '트랜스포머'의 로봇처럼 다양한 모양으로 바뀌는 신개념의 전시였다. 이는 프라다가 단순한 패션이 아닌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예술 자체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전히 혁신적인 트렌드를 보여주며 거대 패션 도시 건설이라는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는 프라다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가히 악마도 선택한 매력적인 브랜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패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에서 출발한 브랜드, 루이비통 (0) | 2022.10.24 |
---|---|
장인 정신이 만들어 낸 헤리티지, 에르메스 (0) | 2022.10.21 |
지금 가장 핫한 브랜드, 구찌 (0) | 2022.10.20 |
변하지 않는 세기의 스타일, 샤넬 (2) | 2022.10.19 |
트렌치코트의 대명사, 버버리 (0) | 2022.10.13 |
댓글